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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부산교회 | 2012.01.05 13:05 | 조회 12141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장 14절 ~ 18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큰 것이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를 크게 여기고 싶고 높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우러러 봐주길 원합니다. 남들이 나를 보고 무시하고 멸시 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사람이 형편에 의해서 굽신굽신하고 예 예 해도 속에는 이기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는 자신을 세우려고 하는 마음이 사람의 밑바닥에 기본적으로 깔려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참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이고 그것이 내 자신이라는 마음이 들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내 자신의 근본을 보여 주셔서 나를 높이고 세우고 인정받아 왔던 것을 끝내게 하시고 우리에게 마땅히 하나님이 세워져야 되고 높아져야 되고 그분이 찬양을 받도록 해주십니다. 이세상은 사단에 마음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대적하는 그 마음이 바닥에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들어도 그 마음 밑바닥에 들어 가보면 여전히 자기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고 거스르고 대적 하고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는 마음이 듭니다.

    원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3:19) 라고 하셨습니다. 흙이 자랑할 것이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 흙이 보배가 되어 지려고 하고 흙이 세워 지려고 하니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겁니다. 원래 우리는 무엇을 잘 못하는 사람 이예요. 그런데 칭찬을 한번 들으면 그때부터 힘이 들어가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니까 피곤한 것입니다. 원래 못하는 사람임을 알면 자유롭고 이런 나를 써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죠. 제가 이렇게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제가 남들보다 잘난 것이 있어서 이렇게 하겠습니까? 절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포항에 있을 때 한번은 강대상 뒤에 앉아서 예배를 보기위해 오시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보는데 문득 ‘저 분들이 뭐 하러 여길 오시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전하는 그 말씀을 들으러 오는 것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내가 저 형제자매님들 보다 더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더 똑똑한 것도 아니고 더 잘난 것도 아니고 저분들을 가르칠 만한 그런 사람도 아닌데 어느 날 제가 목사가 되어있고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세운 것이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은혜로 되어 진거구나. 저분들을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제 마음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너무 감사한 겁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님 때문에 정말 이런 은혜를 입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인 나귀가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누가 나귀를 보고 환영을 합니까? 나귀는 매를 맞아야 하는 짐승이고 정욕적인 짐승이고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 나귀등에 예수님이 타고 계시니까 예수님 때문에 나귀가 같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셔서 내가 대접도 받고 교회 안에서 세워짐도 받고 은혜를 입는 것이지 결코 내가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잘났고 자랑할 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 안에 오신 예수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영광스럽더라고요. 이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 한다는 것이 너무너무 소중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천지창조라는 곡을 만들었던 하이든은 참 많은 유명한 곡들을 작곡했던 작곡가입니다. 하이든은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하이든은 주옥같은 곡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천지창조라는 곡이 있습니다. 천지창조라는 곡을 큰 홀에서 유명한 지휘자의 지휘를 아래 그 곡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이 끝났을 때 지휘자를 향해서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지휘자가 청중들에게 박수를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저는 이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이 곡은 제가 지휘를 잘했기 때문에 된 것이 아니고 이 곡을 작곡한 분이 있습니다. 이 박수는 마땅히 곡을 작곡한 그 분이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객석에 있는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저분이 이 곡을 작곡하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하이든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하이든을 쳐다보면서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이젠 하이든이 사람들에게 박수를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물론 이곡을 작곡했지만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곡을 쓸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이 내게 이곡을 작곡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절대 제가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이 곡은 하나님이 나를 빌어서 작곡하게 하신 겁니다. 마땅히 이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라고 하이든이 말을 했습니다. 하이든의 말이 마치니 거기 다 모였던 청중들이 일제히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향해서 박수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하이든이라는 분이 많은 곡을 작곡해서 얼마든지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을 사람들에게 부각시켜서 으씨 될 수 있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자기가 존경을 받아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방금 은광이가 나와서 간증 한 것처럼 자기가 음악학교를 나와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은 그런 생각에서 바꿨다고 했는데 잘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이든이라는 사람은 자기를 아는 사람이지요. 나라는 사람은 사실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라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거지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들은 다 자기영광으로 취해서 살잖아요.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게 드리거나, 하나님을 위해서 쓰거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한 것 이니까 내가 이룬 거니까 내 것이고 내가 머리가 좋고 수고 한 것 이니까 다 내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보면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다니엘4:30~32)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의 말이 그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7년 동안 짐승처럼 버려져서 가장 낮은 곳에서 비참하게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 산다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전도서를 읽어보면 전도서 제일 마지막 장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12:13)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예레미야2:19) 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그 주인을 마땅히 우러러 보는 그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이번에 11기로 단기를 나가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지원한 나라가 자메이카입니다. 10명을 뽑는데 44명인가 43명인가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니 우사인 볼트를 보러 가야된다고 지원을 했다는 겁니다. 대구 육상경기대회 때 우사인 볼트가 왔었잖아요. 비록 100m 부정출발로 실력 당했지만 200m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대구교회에서 자메이카로 단기를 다녀온 학생들과 자매결연도 맺고 음식도 가져다주고 하니까 우사인 볼트가 너무 기뻐하면서 “너희들 자메이카로 와라 오면 나를 찾아라!” 라고 했더니 이번에 전부다 우사인 볼트를 만나러 간다고 지원을 했다는 겁니다.

    우사인 볼트는 키도 크지만 달리기를 잘합니다. 세계신기록을 가지고 있지요. 발을 한번 뗄 때 6m~7m 를 뛴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박찬호 선수처럼 어깨가 튼튼해서 공을 던지면 최고속도가 159km 라고 하더라고요. 박찬호 선수가 최고 많이 받았던 연봉이 한국 돈으로 200억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박찬호 선수가 공을 하나 던지는 게 300만원~40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저 같으면 하루 종일 던지겠습니다. 야구에서 보면 선발투수가 있는데 보통 선발 투수가 많이 던지면 100개를 기준으로 잡는데 선수들이 100개를 던지고 돈을 그렇게 받으면 참 많이 받는 거라 생각합니다. 어깨 하나가 튼튼해서 강속구를 던지면 돈을 그렇게 벌수 있고, 달리기 하나만 잘해도 전 세계에서 이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하나님이 준 재능은 다 다릅니다. 여자들을 보면 사각턱부터 달걀형도 있고 요즘은 또 성형기술이 발달해서 사각턱도 다 깎아 버리더라고요. 얼굴도 다 바꾸고 납자 코가 뾰족 코로 바뀌고, 눈도 다 뒤집어서 더 크게 만들고 한국 사람들은 눈이 원래 단춧구멍이라 멀리서 보면 떴는지 감았는지도 잘 모릅니다. 한국 성형기술이 또 그렇게 뛰어나서 중국이나 외국사람 들이 한국까지 와서 성형수술 받으려고 줄을 선답니다. 여기에는 성형수술한 사람이 없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피부도 고운피부를 가진 사람이 있고 거친 피부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우리끼리 볼 때 잘났다 못났다 더 뛰어나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해 하는 게 아니라 다 자기것 으로 취해서 자기영광을 삼고 삽니다. 사람들이 남 보다 잘나고 가졌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가지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또 못난 사람들은 못난 사람 나름대로 자기가 멸시 받는다고 무시하고 무시 받는다고 또 무시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를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사도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자기를 자랑 하려면 자랑할 것이 참 많았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내게서 난 의는 율법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의라고 했습니다. 내가 선한 삶을 살고 내가 나의 행위를 남들보다 착하게 거룩하게 진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은 겁니다. 자기를 세우지 않는 겁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남들보다 잘했기 때문도 아니고 남들보다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제 목사님께서 신년사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말씀에 보면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라고 14절에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서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믿음 없는 것과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꾸짖으시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됐으면 15절 말씀이 없어야 되는데 한참 그렇게 책망 하시고 나서 15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하신 겁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원래 믿음 없는 사람이고 완악한 인간입니다. 우리는 잘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자랑하고 세울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했을까요? 사실 복음은 내 행위나 내 의나 내 수고나 내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자기를 보고 삶을 삽니다.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복음자체가 귀한 겁니다. 나는 원래 완악하고 원래 믿음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시고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나옵니다. 성전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보고 옛날 같으면 그냥 지나 쳤을 텐데 그 앞에 섰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언가를 얻을까 하며 쳐다봤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사도행전3;6)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한번 도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라는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씀하실 때 주여 다 주를 버릴 찌라도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욕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그런 베드로는 자기가 봐도 자기가 한심했습니다. 수제자라고 했던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모른다고 잡아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끌려갈 때 사람들이 너도 저 예수와 함께 있었잖아! 라고 했을 때 자기에게 해가 돌아 올까봐 고난이 돌아 올까봐 모른다고 하면서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하고 저주를 퍼 부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베드로라는 인간 자체가 어떤 사람이냐 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겁니다. 너는 남들 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다. 네가 남들보다 좀 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느냐 라고 하시는 겁니다. 베드로가 여기 있는 우리보다 더 경건하거나 더 선하거나 더 하나님을 사랑 한 것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겁니다. 하지만 베드로 생각은 내가 이래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자격이 있겠어? 나 같은 사람은 안 돼 예수님이 얼마나 실망하실까? 하면서 갈릴리 바닷가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내가 무슨 복음을 전해 나 같은 것이 무슨 예수님을 증거하고 내가 무슨 제자야? 한때 내가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나름대로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이적도 보고 표적도 보고 하나님이 하신 많은 일을 많이 봤지만 나는 안 돼 라고 하면서 베드로는 자기라는 것 앞에 확 무너져버렸습니다. 너무너무 큰 실망을 한 거죠. 내가 뭘 해? 나 같은 것이 뭘 하겠어? 하면서 갈릴리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난 후에 어디를 가셨냐면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나타나신 겁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에게도 나타나시고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찾아오신 겁니다.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깜짝 놀랐죠.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 라고 했을 때 예전 베드로 같았으면 아이고 예수님 저 말고 누가 예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했을 텐데 베드로는 자기를 한번 봤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한번 본다는 이것이 엄청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자기를 본 사람은 자기에게서 벗어나서 못난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실망을 느끼고 빠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것하고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면서 나를 왜 또 찾아오셨지? 아!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런 나를 알고 계셨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라고 하셨구나! 베드로처럼 이 마음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쓰려고 이 마음을 나오게 해서 베드로라는 종지부가 찍혀지게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완악한 것과 믿음 없는 것을 책망하시고 너는 그런 인간이야 라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야기 하셨다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전 같으면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주를 사랑함을 주께서 아시 나이다. 주님 나를 다 알고 계시잖아요. 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제는 베드로가 자기를 한번 본겁니다.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에게 내가 너한테 실망했다. 그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렇게 안할 줄 알았는데 라고 하시면서 실망하신 것이 아니고 네가 내 양을 치고 내양을 먹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사도행전3;6). 라고 한 겁니다. 베드로 자신에게 의와 선이 있고 남들보다 좀 더 성실하고 경건하고 낫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었지만 더 이상 자신의 모습에 매이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된 겁니다.

    오늘은 2012년이 시작된 첫날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했습니다. 어제 신년사 말씀 중에 목사님이 얘기하셨죠? 첫째 해외에 나갈 것. 두 번째 물질로 동참할 것. 세 번째는 기도할 것. 이 세 가지를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2012년도에는 나 자신에게 매이지 말고 못나면 못난 그대로 마음껏 복음을 전하세요. 복음 자체가 능력이니까요.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완악하고 믿음 없는 것을 꾸짖었을 때 제자들이 다 고쳐서 나갔습니까? 그런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있는 복음 자체가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너무너무 귀한 것인데 하나님이 세상에 그 많은 사람 중에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이 쉽습니까? 너무너무 쉽지만 어려운겁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겁니다.

    히브리서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히브리서11:24~2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왜 그런 것입니까? 왜냐하면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11:24~26) 라는 겁니다. 모세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 보다 하나님 앞에서 고난 받기를 즐겨했다는 겁니다. 목사님께서 어제 이용재선교사님과 권영 사모님이야기를 처음에 언급을 하셨습니다. 이용재선교사님은 예전에 동부산교회에 계셨죠. 저는 이용재선교사님에 대해서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복음을 늘 전하셨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1991년도 파라과이 첫 선교를 나가셨죠. 그때 남미의 첫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남미의 많은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그냥 된 것이 아니고 밑거름 위에 된 것입니다. 이용재선교사님께서 지금은 하나님 품에 안겼고, 파라과이 교회 앞에 복음을 위해 사셨던 목사님이 안치가 되어 있습니다. 육신은 썩어서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잠깐 죄악의 낙을 누리다가 썩어서 없어지거나,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브리서11:24~26)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간 이순신 장군도 세종대왕도 나폴레옹도 알렉산더 대왕도 징기스칸도 뛰어나고 이름 높고 한나라를 다스리고 전 세계를 지배했던 사람들 이지만 이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름이 불리어지고 영웅인 사람들이지만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 겁니다. 그런데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천하를 재패 하는 것보다 크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큰소리치고 산 사람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름만 남고 다 흙으로 돌아간 겁니다. 나라는 육체도 잠시 이 세상에 있지만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 가 중요합니다. 죄악을 누리면서 살수도이겠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제 나는 네 모습 보지 않는다. 네게 준 복음이 큰 것이다. 그 복음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느냐?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잠시 세상의 낙을 누리고 자기영광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런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공주의 아들이면 왕실이잖아요. 얼마나 사람들이 모세의 권세 앞에 떨겠습니까? 얼마든지 모세가 사람 앞에 살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은 겁니다. 에스더도 왕비가 되어서 우러러봄을 받으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유다인 들이 멸망 앞에 선 것을 보고 자기영광을 위하는 것 보다 자기를 버리고 왕 앞에 왕비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긍휼을 입는 위치로 나가서 긍휼을 구하고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인 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일에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냥 나 하나 구원 받은 것에서 끝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 완악하고 믿음 없는 것을 꾸짖기도 하지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사실 이 복음은 예수님을 통해서 완벽하게 손댈 것이 없도록 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되도록 나의 것이 0.00001%도 개입되지 않는 온전한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 겁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합니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결정한 사람입니다. 정죄를 받는다는 것은 저주를 받는다는 겁니다. 아직도 자기행위에 속해서 무엇을 잘해서 자기로 말미암는 기대를 두고 있는 사람은 정죄를 당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받아드린 사람은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지 알았겠습니까? 몰랐겠습니까? 우리가 보는 차원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따먹을 것을 몰랐겠습니까? 따먹을 것도 알았습니다. 그것만 봐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그들이 죄악 속에 또 자신 속에 빠질 것도 알았겠습니까? 몰랐겠습니까? 알았지만 건질 것도 다 계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내려주실 때 율법만 주시고 저주만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어길 것도 알았겠습니까? 몰랐겠습니까? 다 아시고 이미 또 제사법도 보여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믿음 없이 완악하게 살 것도 알았겠습니까? 몰랐겠습니까? 모르셨겠죠? 하나님이 이것은 실수하신 거죠? 그렇죠? 아닙니다. 다 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문제를 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나를 잡아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속에 빠집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에게 빠집니다. 자기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정죄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정확하게 받아드린 사람은 무슨 독을 마시든지 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복음이 이기게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영혼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다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형편에서도 문제에서도 이깁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자기 먹고 사는데 다 급급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사단에게 다 내어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시는데 형편에 종이 되어서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못나고 부족하고 형편이 안 좋은 것도 알고계신데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 하나에 젖어서 그렇게 육신의 마음을 위해서 사는 겁니다. 내 자신하나가 뭐가 그리 잘났습니까? 무시당하고 어려움 당해도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만 주셨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져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실 것입니다. 정말 이시대가 예수님이 오시기에 어느 때 보다 더 가까운 시기라는 마음이 듭니다. 무화과 잎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한 것처럼 새싹이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세상에 일어나는 징조들을 보면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겁니다. 언젠지는 모르지만은. 2012년 안에 자신과 싸우는데 허비하지 말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의 입을 빌려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받아서 정말 나를 위하고 나를 세우고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정말 내 마음에 주신 그 복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겁니다. 우리가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이 내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이 복음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예수님이 이뤄놓으신 것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또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어서 복음을 마음껏 전하는 2012년도가 되길 바라고, 이 말씀을 마음으로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분명하게 일을 하실 것이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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