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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부산교회 | 2012.03.07 11:19 | 조회 7211

    히브리서 10장 9절부터 25절 까지 읽겠습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디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누가복음 16장에 불의한 청지기는 허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허비는 주인의 마음과 다른 마음입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 밖에서 살다가 결국 주인의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마음과 다른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도 아들이고 그가 집을 떠나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게 살 때에도 아버지 마음 안에는 여전히 아들이었지만 다 망하고 자기가 죽음인 것을 알 때 그는 비로써 아버지의 마음 안에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아들로서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해서 많은 세월을 허비하며 아들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그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무엘하 9장의 므비보셋은 다윗과 요나단의 약속 안에서 이미 은총을 입은 자고 왕의 상에서 함께 먹을 자였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섯 살 때도 몰랐고 열 살에도, 스물살에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정확하게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므비보셋은 어느 날 왕궁에서 다윗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므비보셋은 다윗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나름대로의 마음 안에 갇혀서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어둡고 소망없는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다윗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는 이제까지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두려워마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과 약속을 했어. 아버지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풀어 줄게. 우리 왕궁에 와서 같이 살면 돼. 너를 인제 만난 것이 너무 안타깝다 ”

    므비보셋이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1986년도에 복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씻어 주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과거 현재의 죄는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고 앞으로 짓는 죄는 교회를 다니면서 회개 기도를 할 때 죄가 씻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제 마음에서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죄 때문에 너무 고통을 하고 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 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복음을 들으면서 감사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제가 이때까지 속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받아드릴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창조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탕자의 마음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임했을 때 아버지 마음이 들어와 빛과 어둠이 나누어집니다. 아버지 마음은 이것이었는데 ‘내가 거짓된 내 마음에서 살았구나!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구나! 내 생각이 틀렸구나!’하고 마음이 나누어집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음성을 들었을 때 다윗의 말씀이 므비보셋 마음에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므비보셋이 이제까지 숨어서 수많은 세월을 살았는데 자신에게 속았던 것과 다윗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축복을 주기도 하지만 빛과 어둠을 나누는 것입니다. 말씀이 임하기 전에는 나누어 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빛이 임하기 전에는 여러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하나님의 생각을 이야기 하다가 어떤 때는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어떤 때는 말씀을 이야기하다가 뒤돌아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고 어떤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 같다가 또 내 마음을 믿고 판단을 믿는 것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섞여져 있는 것은 스스로는 나눌 수 없습니다. 섞여져 있는 것은 빛이 그 마음에 비추어 질 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복음을 들었을 때 ‘아 내가 속았구나’ 누가 저에게 네가 다닌 교회가 잘못됐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제 마음에는 그게 보여 졌습니다. 제가 다니던 성결교회에는 성도가 2000명이 모입니다. 그 교회를 삼 년 다녔는데 제게 그런 말씀은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기도 열심히 하고 죄 고백하면 씻어준다고 했지 예수님께서 이미 2000년 전에 다 씻어주었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신기한 것은 말씀의 빛이 내 마음에 비추어 졌을 때 ‘아 내가 속았구나 내가 거짓된 종교 안에서 속았었구나’ 그것이 제 마음 안에 보이게 되었습니다. 성경하고 다른 소리를 들었기에 더 이상 그 교회를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추어 졌을 때 우리 마음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담지 않는다면 약속과 상관없는 세계 속에 있다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빛이라고 말하지만 자기 자신을 보면 빛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보면 빛이라고 말할 수 없기에 빛이 되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지 않고 허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호수아 6,7장을 보면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십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면서 여리고에서 취한 물건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이스라엘 백성 누구도 그것을 자신이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물건을 취하면 저주가 내린다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 6장 26,27절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이 때문에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받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7장에서 아이성을 점령하러 갑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 보다 훨씬 작은 성인데 전쟁에서 패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리고성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승리했는데 이 작은 아이성 앞에서 왜 패했을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않으실까 이것은 우리 가운데 어떤 죄가 있기에 돕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리고성에 바친 물건을 취한 사람이 있다하셔서 제비를 뽑아 그 사람을 찾아내는데 그 사람이 아간인 것입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탐을 내어 장막 밑에 몰래 감추었습니다.

     

     그 말씀 여호수아 7장 20,21절을 읽겠습니다.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어서 7장24절부터 26절까지 읽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아간의 속한 모든 자들이 다 돌에 맞아 죽고 불에 태워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바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8장에서는 아이성을 점령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에 일하시고 승리를 이끄시는 데 하나님의 승리가 7장에서 멈췄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승리하는 것이 정상인데 여러분 삶속에 하나님의 도움심이 없고 역사가 없고 형편에 지고 생각에 지는 삶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서 승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과 소망과 말씀이 세워지고 마음에서 패배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마음에 늘 불평과 원망과 절망 속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갑니까? 마음에서 승리자의 삶을 사는 사람, 패배자의 삶을 사는 사람 서로 나누어 져있습니다. 이 7장은 패배자의 모습이 그려져있습니다. 이들이 왜 패했는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을 한다고 하고 말씀을 믿는다고 하는데 왜 내 마음은 믿음 속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는지 왜 내 삶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수 없는지 7장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에 바친 물건을 아간이 숨겼는데 이 여리고성은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성입니다. 하나님이 버려버리고 무너뜨린 이 성을 영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선택하시고 아담 안에 속해있는 모든 인간은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물건이 좋아 보여서 감추어 두는 것처럼 내 인간 속에 있는 것을 내 마음 안에 감추어 두고 있고 끌어안고 있고 숨겨두고 있으면 그게 좋아 보여서 내 장막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찾아봅시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마음은 두 종류입니다.

    첫 번째는 육체의 욕망에 속한 것들입니다. ‘아 나는 세상이 좋아 재물이 좋아’하는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리석게 속고있는 사람입니다. 세상 욕망 속에 있다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세상 욕망과 정욕이 아니라 인간의 옳고 합당한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 종류로 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하나님을 떠나 육체의 욕심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음란하고 욕심 많고 거짓말 잘하는 것 이것이 육체의 욕심 첫 번째 죄라면 두 번째 죄는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내 생각에 맞는 대로 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도 진노의 삶에 속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두 종류의 마음을 품도록 사단이 일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리고를 하나님께서 무너뜨렸고 여리고에 있는 것을 취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버리셨고 인간을 버리셨고 아담에게 속한 모든 잘라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자신 속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보기에 좋고 합당한 것을 품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아하시야 왕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타락한 자들이었기에 부모사이에서 믿음없이 육신으로 타락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믿음이 없으니 육체와 세상을 쫓아갑니다. 육신 속에 빠지면서 ‘이것이 행복은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반드시 그 마음에 느껴집니다. 그 때 사단은 ‘아 내가 여기서 빠져 나가야지’ 하는 마음을 줍니다. 하지만 이게 잘 안되니깐 또 반복을 하고 육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육으로 흘러가는 것을 나쁘다는걸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틀리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사단은 두 번째 생각을 넣어줍니다. ‘네가 이렇게 육신으로 사는데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고 받으시겠냐’라는 생각을 줍니다. 첫 번째는 육체와 욕망에 빠지게 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아하시야 왕은 첫째는 육체에 흘러갔고 두 번째는 이런 나를 하나님은 돕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가 죽을병에 걸려서 마음이 어려울 때 마음이 열려있었다면 하나님을 찾아오겠죠.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빠져 있어도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은 교회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종들 앞에 나옵니다. 사단이 아하시야에게 ‘네가 이렇게 육신을 따라 흘러가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너를 좋아하시겠냐? 너를 싫어 할꺼야.’라고 생각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따라 아하시야는 죽을병에 걸렸음에도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하시야에게 “그래, 너 잘했다. 저주 받아서 죽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열려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한 이 두 가지 중에서 여러분이 보기에 악한 것이든 합당한 것이든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은 다 가짜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속일 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였습니다. 우리 마음엔 악함과 선함을 구분하고 악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끌어안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하나님 앞에 벌 받아야지 내가 육으로 살았으니 하나님이 날 안 받으셔 내가 생각할 때 이건 합당한 생각이지만 선악과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온 것은 생명나무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실과를 먹어야 하는데 선악의 지혜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닫히면 여러분에게 더 이상 길이 없기에 마귀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우리에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가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온 마음으로 땅의 소산을 들고 나아갔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거절하니 가인 속에서 악이 솟구쳤습니다. 가인이 마음에서 분이 나 대적을 했습니다. 그 분을 하나님 앞에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을 품고 있는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은 자기와 땅을 믿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믿는 것들을 다 끊어 버리셨습니다. 그 때 가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꺾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죄인으로 대적자로 악한자로 몰아가십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아벨을 죽인 것은 육이고 하나님과 다른 마음입니다. ‘나는 길이 없고 설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가인이 가진 두 번째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고 동생을 죽인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악하고 무서운 것은 ‘이런 나는 어디를 가도 설 곳이 없고 저주를 받는다.’ 라는 두 번째 생각 안에 가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그 생각 속에서 끌어 내주고 은혜의 표를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마음에 은혜의 표를 담을 마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가인을 몰아가신 것입니다. 자기에게 길이 없고 방법이 없고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그 위치에 오기까지 그를 몰아 가셨습니다. 가인에게 하나님의 참 마음과 사랑을 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자를 그대로 내어 버려두셨고 사형을 명했는데 사형 받아 마땅한 자들이 자기를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로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 싶은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선하고 합당한 것이 많으면 하나님의 것을 절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내어버려 두어서 하나님 없는 길이 얼마나 고통이고 불행한 길인 것을 보여 주시려하십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내어 버려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서 허랑방탕하고 고통과 죽음을 맞았을 때 아버지를 떠난 것이 사망인 것을 알게 되길 바란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음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불순종가운데 출생했고 불순종의 열매를 맺고 삽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찢겨져 버림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신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통과 죄와 사망아래 내어버려 두신 것은 육을 쫓아가는 것이 고통이고 괴로움인 것을 보여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악하고 육신적으로 사는 나에게 저주를 하시고 듣지 않으시는 그런 마음이신가? 하나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부터 23절까지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여러분 여기 성경을 읽어보면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패역을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성경에서 안본다고 하면 안보는 겁니다. 맞습니까?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물을 보지 않으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덮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아도 그것은 틀리기 때문에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허물이 하나있을 땐 꿈쩍 않는데 허물이 열 개 있으면 마음에서 흔들립니다. 이것은 인간마음의 기준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개도 보시고 열 개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허물 하나는 괜찮은데 허물이 백 개라고 하면 마음이 눌려져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허물과 패역을 다 덮으시고 사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내 허물을 보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23절,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해할 사술이 없고 해할 복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10장을 읽었습니다. 10장 9절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는 정말 타락하고 악한 죄인,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세우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둘째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서 둘째아들의 허물을 보고 있습니까? 15장의 아버지가 둘째아들의 패역을 보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마음 안에는 아들의 허물도, 패역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 안에 있는 빛을 봤습니다.

    “와~ 우리 아버지는 빛이시구나! 아버지 마음 안에 있으니 나도 빛이네”

    그래서 하나님의 빛과 우리 마음이 연결되어 서로 사귐이 되면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능력과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가책하면 자기가 좋아질 줄로 알고 있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둘째아들이 자기 죄를 가책하고 괴로워하는 단계에서 끝이 나면 절대로 그를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마음으로 돌아가면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 속에 발견됐을 때 믿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을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나는 아담 안에 있지 않고 예수님 안에 있구나, 내가 부활했구나’ 성경은 그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있던 나는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었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심을 받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고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영원히 온전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다음 15절을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어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나는 허물이 있고 추악하고 더럽고 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거룩하게 하셨고 나를 위해 온전케 하신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도록 다 해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힘입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가짜이기 때문에 우리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용기를 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면서 나아오길 바라시지 않으십니다. 행위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오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물이 많고 육신적으로 잘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을 바라볼 때 육체를 보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된 영혼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교류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와서 죄를 이기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흘러 올 때 우리 마음의 욕망과 정욕을 다 녹여버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것으로 마음을 이기고 정욕을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빛은 어두움을 다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오늘도 어두움은 내게 와서 육체를 통해서 내게 역사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어두움에 잡히지 않고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의지나 각오로 사단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편 5편 7절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아버지에게는 풍성한 인자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본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이제 그러므로 너희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사” 라고 되어있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이루어 주신 그 세계입니다. 한 구절 더 찾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5절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셨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영원히 온전케 하셨습니다.

     6절,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우리는 이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된 사람입니다. 아담에 속한 우리는 새 언약의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해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속해 있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속해있습니다. 제 육신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입니다. 살아있지만 끝난 것이고 없어질 것입니다. 제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고 이제 저는 육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 안에 있기 때문에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계속 육체 안에서 판단하고 계산합니다. 성경은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담 안에서 죄로 출생된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입니다. 아담의 씨로 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에 속한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아 끝을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끝을 내시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예수와 함께 부활한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 것이 되었습니다. 옛날 자동차가 아니라 새 자동차입니다. 옛날 엔진이 아니라 새 엔진을 달았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사단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거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는 것이 예수님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을 예수님이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하나님과 하나 된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고 그리스도가 나를 도구로 쓰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빛을 만날 줄 믿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육체, 인간에 속한 것을 붙잡는 것이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 곳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여러분 마음이 지나간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가 새 것이 되도록 하셨는데 예수님의 약속 안에서 이끌림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소망 안에서 살 수 밖에 없고, 평안 안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사단이 역사하는 육신이 끝난 것을 알았고 이것이 이미 십자가에서 지나간 것을 알기 때문에 육신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말씀의 이끌림을 받고 말씀이 우리가 머물 집이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복되게 하실 수밖에 없는 이 놀라운 세계에 하나님이 우리를 두셨습니다.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시고 나를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옮기셔서 예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여러분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닫게 했던 그 마음, 하나님은 여러분의 패역, 허물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를 보시고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여러분의 것이 되어서 믿음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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