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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산교회 | 2012.01.23 20:46 | 조회 10477

    오늘아침 우리는 마태복음 7장에 있는 말씀을 같이 나누시겠습니다.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7절까지 읽었습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무조건 약을 처방하지 않습니다.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진찰을 하지요. 그래서 제일 먼저 피를 뽑고 엑스레이도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먼저 하더라고요. 필히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은 검사부터 먼저 하는 거죠. 정확하게 병이 난 원인을 진찰해 내더라고요. 먼저 치료부터 하려는 것이 아니고 ‘왜 아픈가? 무엇 때문인가?’ 이 사람이 결핵 같다 싶으면 잘 안보여도 피를 배양한다고 그러더라고요. 피를 뽑아가지고 그걸 가지고 배양을 시켜보면 숨어있던 결핵이 확 퍼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아 이게 결핵이구나!’ 피를 가지고 배양을 시켜본데요. 그러면 그 안에 숨어있던 병균이 확 드러나잖아요. 정확하게 원인을 잡아내야한데요. 병이 낫을 때에는 정확한 원인을 잡아내야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들은 병자를 정확하게 먼저 진단부터 한다는 거죠. 치료하기 전에 진단부터 하죠. 물론 애매하면 이 약도 써보고 저 약도 써보고 하면서 어째든 병의 원인을 잡아낸단 말이죠. 옛날에 어떤 한분이 무릎 관절에 관절염이 나서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일년동안 치료를 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고 더 심하게 병에 걸렸었잖아요. 그 병원에서 도저히 안 되니까 저 여수 애양원이라는 미국인 의사 선생님께 가보라고 했죠. 거기 가서 미국인 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해보니까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고 결핵성 관절염인 것을 정확하게 잡아내가지고 결핵에 관한 약을 먹었는데 얼마 안되서 금방 나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류마티스 관절염인줄 알고 일년동안 약을 한가마니 정도 먹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약을 한가마니 먹었었는데 안 낫더라는 거지요. 알고 보니까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고 결핵성 관절염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모든 약을 다 끊고 결핵성 약을 먹으니까 바로 낫더라는 거죠. 정확하게 원인을 진단 해보아야하는 겁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그리고 치료를 하는 거죠.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이 안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참 무지하다는 거지요. 정확하게 자기에 대한 진단을 안 해본다는 거죠. 내가 누군지를 진단을 안 해보는 거예요. 정확하게 진단을 해보아야 하는 거죠.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전방에 경기도 연천 최전방이죠. 백마고지 있는데 거기에 있을 때는 매일 우리 군인들하고 같이 군장을 매고 하루에 10km씩 구보를 했어요. 그때 사단장님이 구보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일 오후에 10km 구보를 하면 40~50분대에 주파를 했어요. 10kg 완전군장을 하고 매일 했어요. 남자들이 악이다 깡이다 하면서 한명도 낙오하는 사람 없이 갔다 와야 해요. 한명이라도 낙오하면 갔다 오고 나서 낙오하는 사람만 벌 받는게 아니라 소대원 전체가 벌을 받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정신력 가지고 버텼죠. 한명도 낙오 안 해요. 낙오하면 다 혼나기 때문에 낙오하는 사람 어깨 붙들고 끝까지 10km 구보하거든요. 그러면서 전우애가 생기거든요. 10km 구보를 하다보면 사점이 꼭 와요. 매일 사점을 저는 경험했으니까요. 구보해보면 ‘아 죽겠다’ 싶은 마음이 들고 ‘더 이상 못 뛰겠다.’ 싶은 마음이 들고 그러니까요. 건강했죠. 매일 10km 구보를 했으니까 저는 건강한줄 알았어요. 근데 이제 제 아내가 자주 산에 올라가자고 해서 매일 군대 생활 할 때 같았면 금방 뛰어올라갔다 내려오고 그러거든요. 제가 운동을 자주 못해요. 제 생활이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저는 뒷산 이거 뭐 간단하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가끔 제 아내하고 가보면 제 아내는 늘 비실비실 빌빌하잖아요. 이 산에도 코스가 있잖아요. 한바퀴 빙 도는 코스가 있고 산꼭대기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가 있고 평지 길로 갔다가 내려오는 코스가 있고 저는 가서 귀찮아가지고 평지 길로 갔다가 평지 길로 오는 것을 원하는데 제 아내는 꼭대기 올라갔다가 내려오려고 하는데 ‘야 저 비실비실 걷는 사람이’ 근데 올라가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야 이거 나도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어 가는가보다’ 싶은 마음이 생겨요. 20대하고 50대가 되었는데 영 다른 거예요. 마음은 뻔한데 옛날에 간단한데 간단하게 뛰어갔다 내려오고 간단했는데 실제로 가보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고 한바퀴 돌기 싫고 올라가기 싫고 그런거에요. 이렇게 보면 정확하게 사람들이 자기를 진단해 보아야 해요. 육체도 그러하고 영혼도 그러하고 그래요. 제가 운동을 많이 안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옛날에는 뭐 공수훈련 한달씩 받고 하늘에 올라가서 낙하산 타고 내리고 그랬을 때는 눈에 정말 보이는 것도 없고 그러잖아요. 근데 보면 운동을 안 하고 몸이 지금 내가 운동을 해야 되겠는데 그런 마음이 뻔한데 많이 못하고 있고 옛날 20대와는 다르니까 다른 내가 조금씩 보이는 거에요. 사람들이 자기의 모습을 모르는 거에요. 평생 자기모습을 모르고 죽는 사람도 참 많아요.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형제자매님들 가끔 만나면 한마디씩 한마디씩 던지자나요 근데 형제자매님들 보면 주제파악을 못해요. 정월초하루부터 주제파악을 못한다고 하니까 죄송합니다만은 자기가 누군지를 몰라요. 살짝살짝 건드려보면 자기가 대단한줄 아는가 봐요.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정말 모르는 거에요.

     

    어제 장년형제님들 모였을 때 그랬어요. 오늘 우리가 돌아가면서 간증을 합시다. 오분, 십분 정도씩 돌아가면서 합시다. 무슨 간증을 좀 하는가 하면 박옥수 목사님께서 건 40~50년 동안 우리에게 계속 가르치시는 게 있는데 도대체 박목사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저렇게 하고 계시는지 그걸 이제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보라고, 누구누구 이야기 좀 해보라고 하니까 돌아가면서 하는데 방향이 조금 맞추어져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엉뚱한 곳 가가지고 책상다리 긁는 사람도 있었어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를, 목사님이 지금 우리에게 40년 50년 동안 설교를 하시는데 무슨 메시지이냐 그거 이야기 해보라고 그러면 그걸 우리 교회 오랫동안 10년 20년 30년 심지어 나와 가지고 들은 사람도 ‘도대체 목사님 무슨 이야기 하는겁니까?’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영 엉뚱한 소리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럼 주제파악 못했다는 거지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자기는 안다고 생각하고 다니는 것 보면 기가 차는 거에요. 설교자로서 목사로서 강단에서 실컷 이야기하고 밑에 내려와서 들어보면 영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죄송합니다만은 저렇게 못 알아들을 수가, 왜 못 알아듣는가 하면 그 사람은 자기생각속에 빠져있는 사람이에요. 자기 생각에 정말 그래요. 주제파악을 아예 못하는 거에요.

    가끔 이야기 드리잖아요. 경청이라는 책을 보면 주인공이 나오는데, 좋은 대학교 나와 가지고 바이올린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주위에 있는 동료들이 별명을 붙여줬잖아요. 이토벤이라고. 본인은 그게 그렇게 좋은거에요. “이야 주위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가보다. 내가 베토벤의 노래를 즐겨들으니까 나를 고상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이토벤이라고 부르지!” 너무 흐뭇 한거에요. 그런데 어느 날 후배가 “아이고 선배님 식사한번 합시다.” “좋지” 그래서 밥을 먹게 되었어요. 직장후배가 “선배님 직장동료들이 선배님한테 왜 별명을 이토벤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아이고 그거야 내가 고상한 사람이고 내가 베토벤 노래를 즐겨듣고 하니까 나를 좋게 생각해서 이토벤이라고 부르는거 아니겠어?” 그이야기를 들은 후배가 기가차는거에요. 참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선배님 아니올시다. 선배님을 지금 이토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선배님이 고상한사람이고 베토벤의 노래를 즐겨듣는 사람이라서 이토벤이라부르는 것이 아니고 선배님은 베토벤의 귀를 가졌다 하여 이토벤이라 하는데 선배님 베토벤의 귀는 귀머거리거든요. 선배님은 누구이야기도 안 듣기 때문에 이토벤이다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세상에 세상에 선배님을 모든 사람이 다 놀리기 위해서 이토벤이라 부르고 있는데 놀리는 줄도 모르고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 알고 착각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거죠. 사람들이 다 자기생각에 빠져 있는거죠. 교묘하게 빠져있기 때문에 남은 비웃어도 자기는 좋게 들을 수 있는 그 마음 그러니까 살지요,

     

    전전번주 목사님이 대구에서 사역하실 때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는데 대구 파동에서 목사님 사역을 하셨는데 약국하는 자매님이 교회를 나오고 있었데요.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인간은 다 악하다 선한 것이 한 개도 없다. 다 악밖에 없다. 눈꼽 만큼도 없다 그러니까 약국하는 자매님 이해가 안가는거에요. 약국을 하고 있는데 이래보니까 꾸준히 약을 먹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거에요. 그런데 꾸준히 약을 먹어야하는데 약을 먹다 말고 안오는거죠. 그러면 전화를 해보는 거에요. “아이고 약을 계속 먹어야하는데 약을 안먹으면 큰일나는데 당신은 왜 약사러 안옵니까?” 전화를 해보니까 그분이 왈 “지금 돈이 없어서 약을 못 먹고 있습니다.” 하면은 이 약사 자매님은 돈도 있고 하니까 그런 불쌍한 사람들에게 약을 공짜로 주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한테는 공짜로 선을 배풀었단 말입니다. 자기 마음에는 ‘야 나는 불쌍한 사람을 돕기도 하고 하니까 나는 그래도 좀 뭔가 선한 것이 있지, 내가 선한 일을 좀 했고 불쌍한 사람 좀 도와줬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아. 악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조금 낫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거에요 이런 마음으로 우리 교회를 나오고 있는거에요 이제 그 자매에게 목사님은 진리를 가르쳐야하고 믿음을 가르쳐야하는데 그 자매님한테 “자매님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했을 때에 자매님은 “목사님 이런 것은 선이 아닙니까?” 하고 들고 나온단 말이에요. 그런 동안 그 자매는 신앙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고 믿음을 절대 못 배우고 믿음으로 절대 못 살아요. 그 사람은 ‘나한테 조금 괜찮은 것이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교회에 나오고 있는데 진도가 안가요. 다른 진도가 나갈 수가 없어요. 왜? 자기가 조금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진도가 나갑니까? 그래도 내가 조금 할 만한 것이 있고 선한 것이 있는데 무슨 믿음의 진도가 나갑니까? 나갈 수가 없단 말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의 진도가 안 나가는 거에요. 내가 그래도 뭔가 다 악하다고 말은 해도 중심에는 나는 조금 괜찮다는 것이 들어있어요. 살살 건드려보면 팍 튀는거에요. 가끔 제가 형제자매님들을 만나고 하잖아요. 그럼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요즘 이 형제님, 자매님 어떨까하고 살살 좀 만져가지고 “자매님 악밖에 없죠?” 하고 찔러보면 쑥 들어가야 하는데 팍 튀는 거죠. 찔렀을 때 조금 들어가야 하거든요. “맞아요. 나는 악밖에 없어요.” 이래야 좀 더 찌를 수 있죠. 확실히 죽어야되거든요. “나는 정말 악하고 더럽더라고요. 맞죠? 맞죠?” 그래야 장사지내고 끝나는데 ‘아 내가 마음열고 목사한테 나왔더니 아 또 저 주름살’ 하면서 ‘오랜만에 마음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왔더니 또 기분 팍 잡쳐서 가네. 괜히 올라 왔네 말이지. 나오지 말아버릴까? 이놈의 교회. 아 저놈의 목사는 만나기만 하면 나를 못살게 굴고 말이지 볶아 먹어버려라. 아예 어어 볶아먹어. 볶아먹어! 안가나?’ 하고 그러면 그래 갈 때 가더라도 있을 때 이야기를 해야 될 것 아니에요? 사람들이 자기 하나 붙들고 죽을 때까지 있으니까 자기 조금 자랑해주면 헤헤하고 자기 좋다고 하면 헤헤하고 죽을 때까지 그러고 있으니까 진도가 안 나가지요. 정확하게 성경을 읽어보라는 거죠. 성경에서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 성경에서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했다면 그거 한마디라도 깊이 생각해야지요. 가끔은 선한 것도 있고가 아니고 항상악할 뿐이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성경은 우리의 근본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지 사과나무에서는 뭐가 열립니까? 사과가 열리지요. 제가 한 가지 물어 볼게요. 이건 좀 어려운 겁니다. 복숭아나무에서는 뭐가 열립니까? 아이고 맞추시네. 복숭아나무에서는 복숭아가 열리지요. ‘목사가 새해부터 그거 몰라서 묻나?’ 할지는 모르지만 이건 실제로 너무 너무 어려운겁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에서 수박이 열린다고 하고, 참외가 열린다고 하는 사람 있거든요. 그 많은 과일 나무 중에서 “복숭아나무에는 뭐가 열립니까?” 했을 때 “복숭아가 열린다.” 야 이거 놀라운 답입니다. 거기서 탱자가 열립니다. 밀감이 열립니다. 이럴 수도 있거든요. 하나 더 물어봅시다. 조금 더 어려운거 네 자짜리로 물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두자짜리 묻고, 그 다음에는 석자, 이번에는 조금 더 어려운 네 자짜리 갈수록 어렵습니다. 파인애플 나무에서는 뭐가 열립니까? 야 이거 어려운건데 그 교회 목사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파인애플 나무에서 파인애플이 열린다고 하니까 참 놀랍습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데 파인애플나무에서는 파인애플이 열린다. 이거 참 놀라운 거거든요 자 우리가 어떤 나무이냐? 그걸 알아야 하는거에요. 탱자나무에서는 탱자가 열리는 거에요. 거기에 귤이 열린다든지 수박이 열린다든지 그게 안열리는 거에요. 이거 정확해야 되는 겁니다. 분명한 선을 그어야해요.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린다. 더 이상 다른 것은 안 열리죠. 배나무에서는 배가 열린다. 파인애플 나무에서는 파인애플이 열린다. 이거 분명한 선이 그어지지요. 약국하는 자매님은 “아 목사님 내가 그 불쌍한 사람 공짜로 약을 줬는데 이거 선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목사님이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했단 말입니다. 근데 이거를 이해를 못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것을 이해를 해보려고 해봐야 되지 대충대충 교회 나오는 거죠. 아무리 교회에서 이야기 해주어도 교만하기 때문에 대충 뭐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다니지 선을 안 긋는거죠. 목사님께서 예를 들어서 “그거 선 아닙니다.” 했다고 하면은 ‘왜 아니지?’ 하고 파악을 해보고 공부를 해보면 ‘아 이래서 아니라고 하는구나.’ 하고 선을 딱 그으면 “아 목사님 저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그 다음 진도가 나가고 “신앙은 이런 것이다.” 하면서 이끌어 줄 텐데 계속 선한 것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신앙의 진도가 나가고 선한 것이 있는데 무슨 예수님을 믿을 필요성을 느끼겠습니까? 절대 못 느끼지요. 자 성경에는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없는거에요. 근데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러니까 내가 교회에 왔지’ 근데 그게 자기생각에 속는 거지요.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했단 말입니다. 다 치우쳤다고 하면 치우친 거에요. 이건 하나님의 결정문이라는 거죠.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하면 나아만 장군과 같은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신앙이 잘 안 되는 거에요.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나아만 장군은 아람나라에 군대 장관입니다. 그분은 크고 존귀한자였습니다. 아람나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분이였습니다. 근데 이 분이 문둥병에 걸렸단 말이지요. 근데 이제 아람나라에서는 이 문둥병을 도저히 고칠 수가 없는거에요. 근데 마침 그 집에 작은 계집아이가 이스라엘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 와서 자기 집에서 인제 자기 아내를 수종 들고 돕고 있단 말이지요. 그 계집종이 보면서 “아 우리주인님 장군님은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종 선지가가 계신데 거기에 가면 문둥병이 낫겠습니다.” 너무 믿음으로 확신 있게 이야기 하니까 뭐 지금 티끌이라도 잡는 심정이니까요. 아람나라에서 멀리 이스라엘나라에 까지 오게 된 거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종 선지자 엘리사 집에 까지 온 거에요. 그때 이 엘리사 선지자는 종을 보내가지고 나아만 장군에게 “아 나아만 장군님, 당신은 이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일곱 번하면 그 문둥병이 낫습니다.” 하고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주었단 말이지요. 그러면 나아만 장군이 알겠다고 하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면 되는 거에요. 근데 이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위하여 이스라엘까지 왔습니다. 병 고침 받기위해서 정말 왔단 말이지요. 그런데 병 고칠 수 있는 답을 이야기해주었어요.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일곱 번 하라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아만 장군은 화가난거에요.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하면 “내 생각에는 저가 당처위에 손을 흔들어서 기도해서 낫게 해줄 줄 알았는데” 자기 생각하고 너무 다르게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하니까 자기 생각하고 다른거에요. “아 그러면 강물에 목욕할 것 같으면 말이지 우리나라에 아마나와 바르발이라는 강이 있는데 거기서 목욕을 하지 내가 뭐 하러 이 요단강에 목욕을 하러와” 하면서 이 나아만 장군이 화를 내는 거에요. 분명히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에게 답을 이야기 해주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자기를 복주는 거죠. 자기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주었건만 정작본인은 감사해하지 않고 오히려 열 받는거에요. 약을 주었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그 약을 먹으면 되는데 본인은 화를 내는 거죠. 그게 나아만 장군인 것처럼 거기에서부터 갈등은 시작되는 거에요. 자 나아만 장군은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의 고집대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대로 굴복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란 말이에요. 돌아가면 돌아가서 자기인생 그렇게 살겠죠. 근데 거기에서 굴복을 하려면 자기를 포기해야하고 내 생각이 틀린 것을 인정해야하니까, 그 마음 안에 나아만 장군 자기를 굴복해야만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말의 받아들이는 그러니까 회개와 믿음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거죠. 자기 생각에서 돌이켜야 되는 거죠. 그럼 돌이켰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믿고 물에 들어가는 것까지 그래야 변화가 오는거에요. 회개와 믿음. 늘 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거죠. 회개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믿음도 와야 하는 겁니다.

     

    박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해주시더라고요 이 주 전에 나는 1962년 5월 달, 열아홉 살 되던 해인데 목사님은 그때까지 19년 동안 잘났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남들보다 친구들보다 좀 잘난 것이 있고 뭔가 내가 할 수 있고, 자기를 믿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거죠. 62년 오월 달에 군에 입대하기위해, 하사관이 되기 위해서 시험을 치러갔는데 불합격 됐잖아요. 이빨 때문에, 장교 시험도 아니고 하사관시험에 떨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했는거에요. 근데 현실은 하사관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그러면서 그때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러더라고요. ‘야 내가 진짜 형편없는 인간이구나, 하사관 시험 쳐서 군대에서도 떨어지는 인간이 뭐가 잘났다고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나?’ 그러면서 깊이 생각을 해보셨대요. 두 가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내가 정말 못난 자이고 형편없는 자이고 아무것도 아닌 자인데 이런 자를 잘났다고 내가 생각했다는 거지, 잘났다고 내가 판단했다는 거지, 내 생각과 이 판단이 잘못되었구나. 내 생각과 내 판단 이거 믿었다가는 내 판단자체가 엉터리이고 이걸 따라가다 보면 망할 것이다. 내생각과 내 판단 야 이게 잘못되었구나.’ 이걸 정확하게 보셨다는 거지요.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생각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내가 살아왔었구나.’ 그러면서 당신을 믿는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에서 확 돌이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던 겁니다. 그 이후에 10월 달에 복음이 믿어져서 구원을 받았다는 그런 간증을 들었거든요. 우리가 한번 이 마음의 세계에 거쳐야할 단계가 있는데 내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더러운 인간인지를 발견해야 하는거에요. 악밖에 없는 나를 발견해야 한다니깐요. 내가 살인은 안했어도 살인 안했다고 내가 선한 사람이고 내가 간음 안했다고 선한 사람이고 내가 도둑질 안했다고 선한사람이고 이렇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 중심에 들어가 보면 미움이 꿈틀거리고 있고 음란한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고 탐심이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그 마음을 적발해보란 말입니다. 사람이 ‘나 살인 안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간음 안했으니까 도둑질 안했으니까 선한사람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착각을 해도 한참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속을 비집고 들어가 보면 악하고 더럽고 추한 생각, 음란한 생각 온갖 것들이 다 속에 있는 행악의 종자인 나를 보게 나는 악 덩어리이구나. 나는 좋은 나무가 아니구나. 나는 나쁜 나무이구나. 나라는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구나. 나는 정말 반역할 수밖에 없는 나고 대적을 할 수밖에 없는 나구나. 나에게는 선한 것이 없구나. 이게 분명한 마음에 선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악밖에 없는 것을 안다면 내가 정확하게 악한 나무인 것을 안다면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안하죠. “목사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악한 열매만 계속 맺으란 말입니까?” “아 주제파악 못하네.” “맺어야 됩니까?”가 아니고 지금까지 맺고 살아왔으면서 악한 나무인데 그럼 악하게 살아도 된단 말입니까? 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악하게 다 살아놓고 자체가 악인데 주제파악을 못 하는거에요. 사람들이 “목사님 그럼 어떻게 선하게 살아갑니까?” “아 주제 파악 못하네. 선하게 살수 없다니까!”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 마다 정말로 자기 모습을 모르는 거에요. “아 악밖에 없네요. 그럼 대책이 없네요.” 그렇게 나가야 이게 딱 맞는데 무슨 인간에게 선한 것이 있습니까? 다 거짓되고 위선적이고 지금까지 얼마나 우리가 위선적으로 살았습니까? 위선적으로 산거 다 숨겨 놓고 선한척하고 이중 삼중 간첩처럼 살아온 것이 인간이 아닌가요.

     

    제가 당진에 전도자로 있을 때 한번은 제가 좀 화가 났어요 개척교회 전도자로 있을 때 인제 겨우 한명 두명 가지고 시작해서 열 명 불어나고 이십 명, 삼십 명 불어나는데 그때 열댓 명이 모일 때인데 제가 이제 빙 둘러 앉아가지고 설교를 했어요. 제 아내는 그 한쪽 옆에 앉아가지고 “피피” 하고 김새는 소리를 하는거에요. 제가 교제하다가 열받아가지고 엄청 열 받았어요. “저놈의 마누라가 지금 돕는 배필이야?” 화가 나는 거에요. 내가 잘해야지 목사도 되고 뭐도 되고 해야 하는데, 저 ‘피피’ 해가지고 되나? 내가 좀 못해도 잘한다고 해야 하는데 김새는 소리하니까 열받는거죠. 그래 가지고 하루는 “아 오늘은 이까지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해놓고 그때 건물이 2층인가 3층 건물이었는데 “오늘 일찍 마치겠습니다.” 하니까 형제자매님들이 “오늘 일찍 마쳤다.” 하며 좋아하면서 가는거에요. 그래가지고 밑에까지 내려가서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다 보내드리고 이제 올라오는 거죠. 거사를 치르려고 ‘이놈의 마누라 내가 가만 두나봐라’ 하면서, 올라오면서 1층화장실 검사하고 2층화장실 검사하고 다 검사하는거에요. 혹시 안 간 사람 있나 싶어가지고 건물주위도 한 바퀴 확인해보고, 아무도 없더라고요. 방안에 들어가 가지고 문 걸어 잠그고 내 아내하고 욕을 열 두말 쯤 했어요. 온갖 욕은 다 쏟아 부었어요. 더 이상 쏟아 부을 것이 없을 정도로. 문을 열고나올 때에 내가 거울 보면서 넥타이를 고쳐 메고 있더라니 까요. 나와 가지고 창문 열어보고 밖에 혹시 들은 사람 있는가? 없는가? 막 보고 있는거에요. 아무도 안 봤다 싶으니까 평안하드라고요. 그러면서 나를 보니까 속으로 ‘야 이 위선자야 이 더러운 놈아’ 나를 보니까 내가 두 마리 있더라고요. 안 그런 척 하면서 ‘야 내가 완전 위선자구나 위선자로 살아왔는데 위선자인지도 모르고 살았고,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인데도 간음하다 안 잡힌 여자의 모습으로 살고 이 더러운 인간이구나.’ 내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우리가 분명한 선을 하나 그어야하는데 ‘악밖에 없어. 나에게는 선한 것이 눈곱만큼도 없어.’ 자 내가 정말 악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면 남이 무슨 욕을 해도 그게 인정이 되겠어요? 열 받겠어요? 자 지금 여러분들 “아이 목사님 지금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꾸 이야기 합니까?” 악밖에 없는 것 다 알지. 하지만 악밖에 없는데 어떻게 열이나지요? 악하다고 이야기 하면 왜 열이 납니까? 머리로 악한걸 알지 마음으로 악한걸 알면 자기 인생을 내려놓게 되어있어요. 하나님 앞에 ‘나는 악밖에 없네요. 죄밖에 없네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까지 숨기려고 얼마나 고생 많이 했습니까? 숨길필요 있어요? 없어요? 숨길필요가 뭐있습니까? 악밖에 없는데 자꾸 선을 내려고 하니까 피곤하지요. 그러니 말을 못하지요. 악밖에 없는 인생, 나쁜 나무란 말입니다.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히는 거에요. 나쁜 나무란 말입니다. 정확하게 우리 마음에서 아 나는 선한 것이 없다는 부분에 분명한 선을 그으면 선을 행하려고 하는 마음 그게 끝나는 거지요.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악밖에 없다. 분명한 마음에 선이 그어져야 하는거에요. 악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면 그다음은 내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나는 악밖에 없는 인간임을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해요. “자매님 잠깐 와보세요. 저는 정말 악합니다.” 그럼 어떻게 악하게 살아왔는지 한번 이야기도 해보아야 해요. “나는 이렇게 악합니다.” 근데 마음속에 사람들이 자기가 근본 잘났다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 마귀에게 잡힌 거죠. ‘그래도 나는 이거는 괜찮지’ 그래도 때문에 인생 망친다니까요. 바퀴벌레가 더럽잖아요. 온갖 병균들이 있고 그런데 바퀴벌레 왼쪽 발은 예쁘게 여깁니까? 우리는 종자자체가 행악의 종자입니다. 나쁜 나무라는 거죠.

     

    하나님이 내 것을 받으십니까? 가인의 제사를 받느냐 말이에요.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안 받는단 말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이란 말이에요. 땅에서 나오는 소산물은 하나님이 안 받아요.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때, 정한 짐승만 제물이 될 수 있어요. 부정한 짐승은 제물이 될 수가 절대 없어요. 드려도 안 받아요. 그러면 양이나 염소나 소 같은 경우는 정한 짐승이란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정한 짐승은 되새김질을 하고 쪽발이어야 합니다. 두 종류가 있어야하지요. 토끼는 정한 짐승입니까 부정한 짐승입니까? 예. 아무리 예뻐도 토끼는 부정해요. 왜냐하면 다리가 여러 개 있거든요. 두쪽이 안 나누어져있어요. 말은 정한 짐승입니까? 부정한 짐승입니까? 타고 다니는 소처럼 생긴 거요. 말은 발이 쪽발입니까? 하나로 되어있습니까? 소는요? 소는 두 쪽이죠? 말은요 하나이지요. 그럼 부정하지요. 개는? 우리 장년형제님들이 좋아하는 보신이는 발도 여러 개이고 부정하고 되새김질도 안하고 부정하고 그렇지요. 돼지는 돼지족발 좋지요. 돼지는 발은 쪽발이라도 되새김질을 안 해서 부정한 짐승이란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재물을 드릴수가 없단 말입니다. 자 그러면 돼지 자체는 하나님이 안 받아요. 그럼 발은 쪽발이니까 발 딱 끊어서 하나님 앞에 가면 “족발 드세요.” 하고 가져가면 하나님이 받으십니까? 절대 안 받으시지요. 여러분들이야 돼지 족발 좋아하시지만 돼지 자체는 종자가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에 돼지 자체를 안 받아요. 성경에 우리는 다 부정한자 같아서 인간은 부정한자라는 거지요. 근본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은 선해보여도 부정한 곳에서 나온 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절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하나도 받지를 않아요. 하나도 하나님은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주님은 부정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받지 않는 다는 사실. 그러니까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가 없다는 거죠. 그것처럼 우리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정확하게 말씀 앞에서 진단을 해야 해요. 그냥 돼지하면 부정하지요. 돼지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까 연구를 해보면 10년 연구한다고 길이 나와요? 100년 연구해도 돼지는 하나님 앞에 재물로 되어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천년을 연구해도 안 되고 영원히 연구해도 안 돼요. 돼지 자체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재물이 될 수 있을까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뭘 해야 하는가 하면 나는 돼지구나 돼지는 부정하지 이건 하나님이 재물로 안 받지 그걸 깨달아야하는 거에요. 돼지 가지고 하나님 앞에 뭔가 드리려고 연구하면 그건 헛고생인 거에요. ‘발은 정한데 발은 내밀어 볼까?’ 자꾸 돼지가 다른 건 가리고 “하나님 요거 발발” 하고 자꾸 내미니까 하나님이 발을 딱 끊어서 그때부터 돼지족발이 나온거에요. ‘요거는 괜찮겠지?’ 우리에게서는 선한 것이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달이 빛을 발하려고 노력하면 괜히 헛고생하는 겁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는구나. 분명히 달이 자기 모습을 깨달으면 스스로 빛을 발하려고 하지 않고 나에게는 빛이 없지 내가 빛을 내려면 태양을 언제나 바라봐야하는구나. 나에게는 태양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달은 자기가 빛을 내려고 하는 수고를 끝내고 자기에게는 빛이 없다는 것을 분명한 선을 긋고 이제 바라보라야 할 것은 태양밖에 없구나 하며 태양만을 의지하고 태양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달이 보름달이 되도 자기를 자랑할 수 없는 것은 야 이 보름달 이것은 내 빛이 아니야 이것은 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았기 때문이지. 태양이 나에게 빛을 주지 아니하면 나는 이 보름달을 비출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아니야. 이 빛은 태양이 준 빛일 뿐이야. 나에게는 빛을 비출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에 이제 나를 통해 주님은 일하실 수 가 있는거에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자 그자를 주님은 찾고 계신단 말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뭔가 자꾸 해보려고 하니까 신앙이 힘들고 피곤하지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정확하게 선을 긋고 깨닫게 되면 내속에 올라오는 나를 믿는 마음과 나를 신뢰하는 마음과 할 수 있다는 이 마음이 거짓된 것을 알면서 이거는 거짓이야 이게 마귀구나 내가 할 수 없는데 자꾸 할 수 있는 마음이 게 마귀의 정체이구나. 내가 지금까지 나를 몰랐고 선이 없었기 때문에 뭔가 할 수 있는 거기에 내 마음을 다 빼앗기고 주고 살았는데 아 이게 마귀의 정체이구나.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자기의 모습을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가 있는 겁니다. 얼마나 마귀가 교묘한지요. 분명한 자기에 대한 선을 긋지 않는 사람은 마귀가 넣어주는 마음 다 받아들여가지고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마귀의 꼭두각시노릇하면서 살아가는 인생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분명한 선을 긋고 이제 자기에게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달이 태양만 바라보듯이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것입니다.

     

    신년사 말씀 중에 이제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랬습니다. 자 이제 나에 대한 모든 기대는 끝나고 만민에게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믿는 것도 아니고 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을 나타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만을 기대하는 예수님만을 믿는 그 믿음의 사람. 이제 2012년도에는 나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내가 기대할 것은 예수님 외에 없구나. 내가 살아가야 될 일이 있다면 복음 외에 없구나.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제 나를 나타내고 나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분명한 선을 그으십시오. 나는 아니야 나에게 나오는 것은 더러운 것 밖에 없어 내가 기대할 것은 예수님 밖에 없어. 선한 분은 예수님 밖에 없고 믿을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 그래서 자기 자신을 철두철미하게 불신하고 예수님만 믿는 믿음으로 2012년도를 살아가시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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